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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같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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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해강 작성일17-12-01 16:20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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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TON DECLARATION
November 20, 2017

보스톤 선언
Boston Declaration
미국의 그리스도인에게 드리는 선지자적 호소
A Prophetic Appeal to Christians of the United States

1. 호소의 필요

정의를 외치셨던 유대인 예언자이신 예수님의 삶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는 말씀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합니다. 이에 주류 권력자들의 손으로 저질러진 성폭력에 대해 여성들과 남성들이 외치는 아우성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분노합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복음주의에서 대세가 되고 기독교의 다른 영역을 지배하는 백인우월주의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주 백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압제를 당연한 것으로 명문화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원수들과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싸울 원수는 가난이요, 경제적 착취며,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압제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믿음으로 이 원수들과 싸울 것입니다.
 
 

2. 생명을 택하라

오늘날은 인종차별주의가 극성을 부리며 오로지 돈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된 가부장적 제국주의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내가 너희 앞에 생명과 선과 사망과 악을 택하도록 두노니... 생명을 택하라”(신명기30:19).

오늘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생명을 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망으로 몰아가는 죄의 권세들이 준동(蠢動, 꿈틀거림)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성령이 이끄시는 싸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중 하나가 압제를 당할 때마다, 우리는 거룩한 영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권세로 자유를 위해 죄의 권세들과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미국에서는 사망과 악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보다는 사망을 계속하여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단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또는 대통령의 권세나 권력의 지위를 등에 업은 자들이며, 또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이며, 모든 것을 자본의 가치로 환산하고 이윤을 낳게 해 준다는 경제적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며,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악을 옹호하는 순간에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들이 믿는 바는, 우리의 세계를 자신들의 체제로 만들고 압제하는 사망 권세들과 단절하고 그들에게 배격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들을 수용하거나 옹호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체제에 여러 방면에서 그리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가담했음을 인정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자주 그들과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도 삶의 다양한 양식 가운데서 역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복음을 실천하는데 자주 실패했음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망과 죄악에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를 찾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선을 추구하고 다시 또 다시 생명을 선택합니다. 이 선언은 그런 선택의 하나로서, 생명의 하나님을 바라고 매달리면서 우리의 현 시대에 하나님의 그 생명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합당한 겸양을 표방한다고 해서 우리는 잠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하여 준비된 대안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만약 우리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예수님이 가신 좁은 길입니다.



3.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예수님의 길은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 안에 모든 다양성을 지니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도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로운 사랑과 함께하심에서 결코 배제되지 않습니다(미가6:8; 행10:34-35).

모든 민족이 그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성을 보일지라도 즉, 인종, 민족성, 성별, 성적지향성, 그리고 종교가 다를지라도, 그들에게는 사랑하고 희망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아름다움과 인간됨이 있음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길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세상이 오늘날 같은 모습이 된 이유와 방식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최선과 기도와 노력과 체험적 시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길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 좁은 길은 우리에게 손짓하면서 부릅니다. 즉, 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악을 대적하는 일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전략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며, 무지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무지와 일전을 벌이며, 사람들이 위협을 받으며 맞아서 쓰러지거나 어떤 식으로든지 압제를 당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들의 편에 함께 서서 우리의 목숨을 바치라고 요청합니다.



4. 애도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이시며, 샬롬을 선포하셨고 살아내셨으며, 세상에 해방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가 애통해하는 까닭은, 우리의 정치가 너무 천박하고, 곤궁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온정이 매말랐으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서로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우리의 행성을 우리가 너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오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애통해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다른 사람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공동체를 위협하는 행동과 태도를 지지하고 조장하는 그런 방식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다음과 같은 현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애통해 합니다: 삶은 망가지고, 가정들은 깨지고, 붕괴된 사회 제도로 인하여 지구 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애통해하는 까닭은, 망가지고 부패한 정치제도 때문이며,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고장난 경제체제 때문이며, 국가 정체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통해하는 까닭은, 안보가 불안하다 하여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구실이 되어버린 국경선들 때문이며,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품기보다는 그들을 무시하고 소외시킴으로 짠 맛을 잃은 교회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그런 죽음의 저변을 흐르는 이념들과 우상숭배를 단죄하며 우리 모두가 생명을 택할 수 있는 길들을 다 함께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정부가 사회 안전망을 제거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절망의 나락이라는 소용돌이에 빠지도록 몰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생명을 지속적으로 위태롭게 하려고 할 때,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떨쳐 일어나는 것은 생사가 걸린 일입니다.

여자들과 유색민족과 다양한 민족과 각각의 종교와 이민자들과 독특한 성적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의 최고위직으로부터 나오는 비방과 폭력의 대상이 될 때 교회가 행동에 나서는 것은 정당합니다. 기업의 돈벌이를 위한 사업을 허용하는 불공정한 정책들이 조수처럼 밀려와 사람들과 이 지구를 착취해 가는 것을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고야 말 것입니다.



5. 단죄

우리는 제국을 건설하려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어떤 인종은 게으르다는 신화와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약물 남용 또한 배격합니다. 이런 일들이 푸에르토리코, 버진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의 영토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화란 군사력을 통하여 지켜질 수 있으며, 자유와 안전 그리고 안보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배격합니다. 우리는 무기의 생산과 확산에 반대합니다. 그것은 지구적 전쟁을 초래하고 미국 내에서는 대량 살상 총기 테러를 유발하여 이로 말미암아 수백만 명의 피를 이 행성에 흘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똘똘 뭉친 지배계급의 거짓 이데올로기를 배격합니다. 그들은 미국의 군대를 후원하고 보좌하며, 유색인종의 가난한 공동체를 착취하고 억압합니다. 그 결과 가장 취약한 민족들은 일어서지 못하고 서서히 파괴되며 그들의 민주주의는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질식되고 맙니다.

미국만은 특별하다는 거짓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부패가 초래하는 악을 배격하면서 우리는 선출직 공무원들과 다방면의 통치자들에게 청렴함을 회복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거짓말로 인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바람에 도덕적 책임감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 우월주의와 편견이라는 거짓 이데올로기를 배격합니다. 백인만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며, 진정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며, 진정한 미국 시민이라는 거짓된 정체성을 우리는 배격합니다. 대부분의 백인 기독교 애국주의 안에 팽배해 있는 반유대주의를 우리는 배격합니다.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폭력과 폭행, 그리고 배제 아래 가두어 버리는 남성우월주의와 여성혐오라는 유산을 우리는 배격합니다.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성적 학대와 괴롭힘을 우리는 강하게 반대합니다.

우리는 지구에 대한 착취를 배격합니다. 특히 지구의 자원을 고갈하게 하고 지구와 그 토양과 바다에 사는 생명체를 해롭게 하는 오염을 반대합니다.

극단적 개인주의라는 환상에 기초하고 소수에게 부가 편중되게 하여 다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 경제정책을 우리는 반대합니다.

이슬람을 혐오하고 무슬림을 반대하는 편견을 우리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혐오를 반대하며, 성적소수자 공동체(Lesbian, Gay, Bisexual, Trans, or Questioning: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 대한 모든 폭력을 우리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이민을 반대하는 모든 언사와 정책을 반대합니다. 세계 곳곳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우리 미국이라는 나라에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융화되어 이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소치(所致)이기 때문입니다.



6. 행동을 하자는 요청

 “너희 섬길 나를 오늘날 택하라!” (여호수아 24:15)
오늘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분들에게 요청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배격합시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이방인을 환영하고 “우리들도 한 때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던 것처럼 이방인들을 사랑으로 대해줍시다” (신 10:19).

우리들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는 다양한 특징이 있음을 증거합시다. 하나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시며 사람들을 그 정체성과 관계 없이 모두 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진짜 연약함과 마주할 때 힘을 잃지 않을까 또는 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우리는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주는 은총을 발견하여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수용하려고 합시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산하는 가운데 우리의 인간성이 온전하게 됨을 발견합시다.
 
우리는 백인우월주의라는 유산이 해체되는 미래를 가슴에 품어봅시다. 어떤 개인이라도 어떤 점수와 가능성정도로 축소되는 비인간화를 우리는 거부합니다. 우리는 모든 개인을 향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맞아들이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 노력하여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같이 싸워나갑시다.

우리는 죽이는 건설이 아니라 생명이 약동하게 하는 건설을 합시다. 우리의 경제적 역량을 모두 집결하여 서로의 건강을 위해, 배부름을 위해, 주거와 교육에 대한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어 우리의 재능과 기술이 만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간절히 싸워봅시다. 우리의 힘이 제국을 건설하는 곳으로 모이지 말게 하고 서로의 공동체를 향하게 합시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 같이 우리가 서로 함께 하는 길을 찾는 사랑 가득한 공동체를 소망합시다. 사랑과 우정이 우리의 삶에서 함께 특징이 되게 하고, 우리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서, 우리의 재정 집행에서 그리고 공공정책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되게 합시다.

우리는 피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함께 노력합시다. 석유화학공업을 추구하는 가운데 일어난 결과와 맞서 싸우며, 지구를 약하게 하고 새롭게 하지 못하게 하며, 오염시키는 모든 생활양식과 맞서 싸웁시다. 그런 것들은 원주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물을 오염시키고 생물의 멸종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위해, 그 안에 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인 모든 피조물을 위해, 그리고 금전상의 이득보다는 생명을 보존하는 일을 위해 대변인이 됩시다.

우리는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며 유대인 형제 자매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언어와 행동에 반대하는 일에 함께 일어섭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인권을 갈망하는 처지에 있는 팔레스타인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합시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무슬림 형제자매들과 모든 이민자들과 함께 합시다. 그래서 이슬람혐오와 외국인혐오에 맞서 싸웁시다. 우리는 종교와 인종 또는 민족적 정체성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차별하고 그들에게 반대하는 입법을 하는 것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환영하고 받아들입니다. 즉,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혹은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분들일지라도 그분들의 지혜를 우리는 환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많은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 들어온다는 것을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



보스톤 선언의 최초 서명자들
Amey Victoria Adkins, Boston College
등…



원문 주소:
https://thebostondeclaration.com/blog/2017/11/18/the-boston-declaration


뉴스앤조이의 기사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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